산골토크 다시읽기
더 스퀘어 The Square
루벤 외스틀룬드 Ruben Ostlund
스웨덴, 독일, 프랑스, 덴마크│2017│142분│극영화
잘나가는 스톡홀롬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크리스티앙. 그는 대형 전시 프로젝트인 ‘더 스퀘어’를 맡게 된다. 전시 준비 도중 지갑과 휴대폰을 황당하게 도둑맞고 직접 소매치기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끊임없이 사건을 생산하고, 불편한 상황을 만들면서 이에 대처하는 크리스티앙의 허영과 이중적 태도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예술의 허상, 자본주의가 가진 불균형,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드러낸다. <플레이>, <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등 전작을 통해 인간의 허위와 이중성을 날카롭고 재치있게 파고들어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최신 블랙 코미디 영화로, 예측 불가능한 내러티브와 독특한 영화적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코미디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2017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
2018. 06. 23. 토요일 무주전통생활문화체험관
진행 : 정한석 영화평론가
정한석)
영화가 조금 길죠. 그래도 긴 영화를 보신 다음에 남아 계시다는 건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는 뜻이겠죠. 궁금함이 많이 남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남 지역 언어로 ‘걸쩍지근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단어가 딱 생각이 납니다. 꺼림칙하다는 뜻이죠. 걸쩍지근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느끼는 이 걸쩍지근함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된 것이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걸 체감하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감독의 이력이 조금 특이합니다. 스칸디나비아 영화뿐만 아니라 동유럽 영화들이 산악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감독은 스키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영화를 정규적으로 배우기 전에 만든 스키 영화를 포트폴리오로 내면서 정규 교과 과정을 이수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영화를 제대로 공부하고 난 이후에 만든 몇 편의 장편 영화 중에서 <더 스퀘어>는 다섯 번째 장편영화입니다.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작년이죠, 2017년 칸영화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칸영화제 시상식장에서 자기의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금방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감독이 청중들에게 ‘나와 함께 크게 고함을 외치자’고 요청하면서 일종의 수상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속에서 신나게 소리를 지르는 감독 중의 한 명이 데이빗 핀처입니다. 제가 본 칸영화제의 수상 소감 중에 가장 뭐라고 할까요? 가장 요란 법석한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감독 자체가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합니다.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장편인 <플레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계기를 갖게 됩니다. 감독이 사는 지역의 중심가 쇼핑몰에는 10살도 안 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돈을 강탈하는 일들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살고 어른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사는 것처럼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길 아래에서 범죄를 저지르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수정하려 들거나 조정하려고 들려는 어른들이 없었다’라는 거예요.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감독의 아버지가 대략 6~7살 때는 바깥에 나갈 때 자신의 이름과 주거지가 적힌 이름표를 달아서 부모가 내보냈답니다. 그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아이는 여기 살고, 나의 아들이니 혹시라도 큰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연락을 주세요. 라는 뜻일 겁니다. 이 말을 듣고 감독이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겠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이름과 주거지를 적어서 내보내면 지금은 반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아이는 어디 살고 누구의 아이인지가 알려지기 때문에 위험한 어른들 사이에 노출된다는 뜻이 되죠. 말하자면, 감독의 아버지 세대가 어렸을 때와 감독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세대는 사회적 관계망에 의해서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다른 사회적 관계를 살고 있다는 것이죠. 감독은 이때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한 가지 계기로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되는데요. 2014년, 감독은 스웨덴에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 설치미술 작품을 의뢰받습니다. 영화 동명의 작품인 「더 스퀘어」라는 이름으로 미술 작품 전시하게 되는데,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일화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시의 내용은 여러분들이 영화 속에서 보신 내용과 거의 동일합니다.
두 개의 좌표가 있습니다. 한쪽은 ‘당신은 사람을 믿습니까’, 다른 한쪽은 ‘당신은 사람을 믿지 않습니까’입니다. 숫자가 기억나시는 분이 계실 텐데요. ‘사람을 믿는다’ 쪽이 43표로 훨씬 많습니다. ‘믿지 않는다’가 3표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아이들에게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사람을 믿는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사람을 믿는다’ 쪽으로 들어가니까 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나의 지갑과 핸드폰을 공공장소인 ‘스퀘어’ 안에 놓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질문이 그 설치 미술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하는 일종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문제를 쉽게 계몽적으로 혹은 계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감독은 본질적인 의문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감독의 경험을 하나 덧붙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감독이 퍼포먼스가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어느 곳에 가도 그런 식의 연출을 잘하는 사람인 거죠. 감독은 뉴욕영화제에 가서 똑같은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자신의 지갑과 핸드폰을 상영장 내부에 놓고 영화가 끝난 다음에 내가 이것을 다시 가지러 오겠다 한 겁니다. 불이 꺼지고 장내가 정리되는 동안 혼란스러워질 수 있겠죠. 나가는 사람이 있을 테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 사이에 지갑이 없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다른 영화제에서는 한 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는데 뉴욕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답니다. 자기의 지갑과 핸드폰이 없어진 거죠. 감독은 자기가 마련한 퍼포먼스니까 어쩔 수 없는 겁니다. Q&A를 하려고 돌아와서 보니 없는 겁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겠죠. 그래서 Q&A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좌석의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어떤 노부인이 행사 진행 내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더랍니다. 감독의 지갑과 핸드폰이 없어진 것이 마치 자기의 죄인 것처럼요. 그래서 그 관객은 감독의 지갑과 핸드폰이 없어진 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혹은 보상해주기 위해서 다른 관객들을 모아 저 감독에게 돈을 얼마 모아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사를 감독에게 알려줬다는 거죠. 그 관객은 아무 죄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어떻게 보면 감독이 바랬던 퍼포먼스에 걸려서 또 다른 어떤 반응과 행위를 하게 된 셈이죠. 사실은 그 자리에서 핸드폰과 지갑을 가져간 사람은 홍보사 직원이었습니다. 감독의 지갑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릴까 봐 따로 챙겨 놓은 겁니다. 이것이 본의 아니게 감독도 청중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퍼포먼스가 튕겨 나가버린 겁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들을 보시다 보면, 전작인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도 마찬가지지만, 어디론가 튕겨 나갈지 모르는 상황들이 많이 겹치고 그것들이 하나의 질문을 형성하는 과정들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감독이 영화제, 전시회, 실생활에서 겪었던 많은 경험을 영화 안에 허구적 세계로 집어넣었을 때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감독 자신의 표현을 따르면, ‘인간성을 연구하는 신호등’이라고 합니다. 신호등을 한번 생각해 보시죠. 신호등은 사회적 법칙과 사회적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죠. 빨간불이면 건너지 말아야 하고, 파란불이면 가도 되는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빨간불에도 건너고, 파란불에도 건너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이 사회적 규칙은 규칙으로써 성립되어 있지만 그런데도 여러 가지 불규칙한 일이 발생한다는 거죠. 이 감독은 사회적 계약과 공공적 장소라는 질문을 던질 때 그 안에서 무언가 계몽적이고 긍정적인 것을 전파하려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것 자체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이냐에 대해서 심각하게, 걸쩍지근하게 고민하는 감독에 속하죠. 어떤 답을 갖고 행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감독이 요구하는 건 오히려 우리 문명에서 일종의 규약과 그리고 본능이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보려 하고 그것들이 충돌할 때 우리의 웃음을 끌어내게 된다는 겁니다. 그걸 두고 우리가 블랙 코미디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을 동시대의 감독 중에서는 블랙 코미디를 표현하는 가장 재능있는 감독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관객의 반응을 만드는 쇼’라고 감독은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굉장히 용기 있기도 하고 건방진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없으면 이런 말 잘 못 하거든요. 그리고 자기는 자신의 영화로 관객들을 테스트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지금 얼마간은 테스트를 당하신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영화에 나왔던 상황들이 닥쳤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하게 될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그게 바로 감독이 제안하고 있는 일종의 테스트이자 감독의 말에 따르면 사회학적 실험입니다. 이 극장은 지금 이 영화로 인해서 일종의 사회학적 실험실이 되는 셈인 거죠.
이 감독의 이름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보실 수 있는 <은행에서 생긴 일>이라는 10여 분짜리 단편이 있는데요. 카메라가 은행 밖을 아주 넓고 먼 와이드, 롱쇼트로 잡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거기에 사람들도 지나가고 사람들은 대화를 하고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은행 앞은 광장입니다. 그런데 어떤 얼치기 바보 같은 은행 강도 둘이 와서 그 은행을 터는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잘 털지 못하고 붙잡힙니다. 그게 이 단편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사회학적 의도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방관자 효과라는 것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효과를 사회학적 용어로 방관자 효과라고 하는데, 감독은 단편영화에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테스트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감독은 이런 테스트를 멈추지 않습니다.
좀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영화에서는 민망하면서도 갑작스러운 텍스트가 등장합니다. 남편과 아내와 어린 딸과 아들이 경치 좋은 설원의 산 밑에서 설원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창 재미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하얗게 눈보라가 일어나면서 눈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눈사태가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 쪽으로 몰려옵니다. 눈사태가 식당을 덮쳐버리는 순간 사람들이 막 뛰어나가고 아비규환이 되는데 주인공인 아버지이자 남편은 자기 혼자 도망을 칩니다.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데 덩치 큰 남자가 혼자 막 바깥으로 도망가는 겁니다. 그리고 화면이 하얗게 가려집니다. 사실 이건 눈사태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눈 먼지였던 겁니다. 그리고 이 하얬던 화면이 걷히고 나면 화면의 바깥으로 도망갔었던 남편이 아주 민망하다는 듯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단란한 한 가족이 휴가를 보내려고 갔던 곳입니다. 그런데 눈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남편이 도망가자 그 순간부터 이 가족은 내분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누군가 도망갈 수도 있겠죠.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잊히지 않는 건 그 장면이었어요. 딸의 시선입니다. 아버지가 돌아왔는데 딸의 시선에 어떻게 날 두고 혼자 도망갈 수 있느냐는 엄청난 냉랭함이 있습니다. 일종의 방관자 효과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가령 내가 이런 상태에 놓여서 저 아버지의 상황이 된다면 혹은 반대로 저 아내와 아이들의 상황이 된다면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는 것에 대해서 테스트 당하는 장면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스퀘어>에는 어떤 테스트들이 있을까요? 감독이 크리스티앙 역의 배우를 오디션할 때 이 사람에게 ‘당신이 이 스퀘어 안에 있을 때 어떤 행위를 하겠소?’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준비해온 오디션용 대사가 감독을 굉장히 감동하게 했답니다. 상황극을 만든 거죠. ‘나의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는데 누군가 나와 삼십 분만 이야기해줄 수 있소?’라고 이야기했다 합니다. 이 좁은 공공장소에서 나와 잘 모르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와 아버지를 방금 잃은 나와 삼십 분 만이라도 대화해줄 수 있냐고 하는 것이 이 배우가 만들어낸 상황극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상황극을 감독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듣게 된 거죠. 그 점이 이 배우를 이 영화 속에 캐스팅하게 된 중요한 이유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 배우를 중심으로 벌어지게 되죠. 가장 첫 번째는 광장에서의 사건입니다. 누군가 도와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즉, 공공장소인 광장에서 (내가 잘 모르지만) 나와 공공적,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도와 달라고 애타게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기의 지갑을 소매치기를 당하게 되죠. 자기는 선의를 베풀었으나 선의의 결과로써 악행이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그것에 대해서 해결해가는 방식이 우리를 굉장히 흥미롭게 만들죠. 그 지갑을 되찾기 위해서 부하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협박 편지를 씁니다. 그 협박 편지를 공동 주택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보냅니다. 공동의 한 집단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조건을 걸어주는 거죠. 그리고 결과는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심을 받으면서 외출 금지 명령을 받게 되죠. 차라리 다행한 일이죠. 그 편지의 영향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죠. 하지만 감독은 위트있는 방식으로 이 행위가 어떤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혹시 투렛 증후군이라고 아십니까? 신경병 중 하나인데요. 굉장히 긴장하고 떨리면 욕설을 하거나 외설적인 말들을 뱉게 되는 병증입니다. 영화에서 어떤 미술가가 자기의 미술에 관해 설명할 때 객석에서 자꾸 욕설을 내뱉는 남자가 있었죠? 그 남자가 계속해서 욕설할 때 누군가가 ‘저것은 병이니까 우리가 관용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화감독이자 미술가이기도 한 줄리앙 슈나벨이 실제로 어느 곳에서 겪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걸 외스툴룬드 감독이 영화에 활용합니다. 전시장도 미술관도 그리고 강연회장도 이를테면 공공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의 미술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공적인 반응이 아니라 굉장히 이상한 반응이 튀어나올 때 그곳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궁금증이나 질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포스터이기도 한 장면 또한 한편으로는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이기도 할 겁니다. 유인원 퍼포먼스를 하는 근육질의 한 남자가 굉장히 잘 차려입은, 미술계의 재정적 지원자들이겠죠, 그들이 앉아 있는 연회장에 등장해서 폭력적인 그리고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를 할 때 그 퍼포먼스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하는 것을 영화는 굉장히 잔인할 정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장면의 끝에 이르면 우리가 겪게 되는 건 일종의 ‘퍼포먼스’가 아닌 ‘상황’이 되어버리는 거죠. 허구로서의 퍼포먼스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허약하게 한순간에 무너지는가를 감독이 일깨워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한 것이죠. 실은 이 장면도 실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러시아 행위예술가 중에 올레그 클리크 Oleg Kulik라는 예술가가 있습니다. 이 행위예술가의 대표적인 퍼포먼스가 바로 개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흉내가 아니겠죠. 자신이 개가 되는 겁니다. 스웨덴에서 이 사람의 전시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내가 올레그 클리크라고 치죠. 옷도 다 벗고, 개 목줄을 매고, 바닥에서 4발로 기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옆에는 ‘개 조심’ 표지판을 세워 놨습니다. 실제로 이 표지판을 무시하는 사람은 문답니다. 그런데 크게 문제가 됐었던 것은 이 사람을 초빙한 스웨덴 미술관 큐레이터의 어린 딸을 실제로 물어서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 행위예술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 이 장면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은 비등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한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허구로서의 가정이 현실적인 공간에서 갑자기 경계선을 무마시키고 그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 하는 것이죠.
이런 경우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두 명의 노숙인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한 명은 주인공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주인공이 돈이 없으니까 빵을 사주겠다 하니 노숙인은 그럼 치아바타 빵을 사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파를 빼 달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상당히 황당하죠. 일단 이 노숙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움을 받아야 할 개념적 상이 아닌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 도움을 받을 때 '주는 대로'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 노숙인은 그 개념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 그녀는 양파를 안 좋아하는 겁니다. 그러면 치아바타를 얻어먹을 수 있지만, 양파를 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거죠. 일종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구체적인 사태가 그 안에서 등장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등장했던 그 노숙인을 생각해 보시죠. 많은 사람이 있는 쇼핑몰에서 주인공 남자에게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 자신의 짐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아이들을 찾으러 가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 주변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구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이 주인공이 생각해 낸 것은 저기 있는 노숙인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앞선 장면에서 노숙인은 크리스티앙이 도움을 주고 행위를 베푸는 그런 대상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이 많은 사람 중에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등극한다는 일종에 아이러니가 발행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사회적 관계나 혹은 장소에서의 일종의 규정성이 얼마나 다르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면을 한번 이야기해 보죠. 앤이라고 하는 인물을 기억하십니까? 이 인물과 주인공인 크리스티앙이 하룻밤 정사를 벌입니다. 정사가 모두 끝나고 정액이 담긴 콘돔을 들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왜 저 남자는 자신의 정액이 담긴 콘돔을 여자가 달라고 했을 때 저토록 두려워하는 걸까요? 남자 입장에서는 콘돔 안에 있는 나의 정액이 처음 보는 저 여자에 의해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공공적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그들 사이에서 하룻밤 관계가 형성되긴 했으나 그 관계가 끝나는 그 무렵에 재등장한 공공적인 사회적 계약과 관계라는 문제가 정액이 담긴 콘돔을 잡고 줄다리기를 하는 기이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거죠. 이 장면 안에도 지금 누누이 말씀드리고 있는 그런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감독이 열렬히 열광하는 것 중의 하나가 유튜브입니다. 소셜미디어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유튜브는 그 무엇보다도 공공적인 장소가 되어 버린 겁니다. 감독은 자신이 유튜브를 굉장히 좋아하고 그게 자신의 관심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문제가 유튜브에서 크게 생겼습니다. 미술관 홍보물 영상이 직원들 사이에서 보여진 뒤 삭제되지 않고 유튜브에 떠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후 큰 문제를 일으키죠. 그리고 주인공 인생도 바꾸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에 주인공이 뭔가를 깨닫고 자기가 피해를 준 소년에게 사과하는 방식을 한번 보십시오. 소년을 끝끝내 찾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소년이 빨리 접할 수 있는 공공적 장소인 ‘유튜브’에 접속해서 내가 사과하는 메시지를 봐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합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사안들이 등장할 때마다 정사각형의 프레임이 많이 등장합니다. 남자가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을 때, 남자와 실내 사이에 가로막는 문이 있고 그 문에 달린 창문을 통해서 이 남자를 가둬 놓은 듯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카메라가 굉장히 주의 깊게 계단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을 비춰주는데 정확하게 정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형적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지속적으로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스퀘어라는 소재와 제재에 대한 문제를 관객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구도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에 ‘걸쩍지근하다’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이 영화의 실험적 의미를 요약하자면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의 관계와 아이러니한 사건들의 꺼림직함에 대해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생각합니까?’가 바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의 전제일 것입니다. 아무튼, 굉장히 복잡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희를 체험의 장으로 이끈 영화였지만, 이것에 흥미를 느끼시고 나중에도 많이 생각 날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